애굽에서 돌아온 예수님 가족
애굽에서 돌아온 예수님 가족
본문 : 마 2:19-23
헤롯이 죽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아기와 마리아를 데리고 애굽을 떠나 이스라엘로 가라.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이 죽었느니라.'하고 일러주었다(마 2:19-20).
그러나 요셉과 마리아는 아켈라오가 그 부친 헤롯을 이어 유대의 임금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거기로 가기를 무서워하였다.
요셉은 다시 꿈에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고향 갈릴리 나사렛으로 가서 살았다.
갈릴리는 같은 동족인 이스라엘 백성들마저 이방으로 취급하던 지역이다(사 9:1).
그리고 나사렛은 그러한 갈릴리 사람들조차도 멸시하던 빈민촌이었다(요 1:46).
이새의 줄기 즉 다윗의 후손인 요셉과 마리아가 나사렛에 살았고, 예수님 또한 나사렛에서 잉태되었으며, 그곳에서 30세까지 자랐다.
이로써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라고 한 이사야 11장 1절의 예언이 응하였다.
즉'(그리스도를)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한 선지자의 말이 이루어졌다(마 2:23).
필자는 본장의 설명을 마치면서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은 성경의 예언을 이루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직접 주관하셨다는 사실이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하나님이시다(잠 16:9).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때로는 사람의 눈에 대수롭지 않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전후 사정을 알고 나면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존재를 실감할 수 있게 된다.
그 예로 이미 본장에서 설명한 사건을 들어본다.
나사렛에 살던 요셉과 마리아가 조상들이 살던 베들레헴으로 갔던 것(눅 2:3-5)은 로마 제국의 정책에 따라 호적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것은 표면적 이유이며, 실질적인 원인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가 베들레헴에서 나실 것이라는 구약의 예언(미 5:2)을 이루기 위해 헤롯 왕의 정책에 관여하셨기 때문이다.
그 후 동방 박사들이 헤롯 왕을 찾아감으로써, 헤롯 왕이 그리스도의 탄생 소식을 듣게 되고, 베들레헴과 그 지경 안에 있는 두 살 이하 사내아이를 죽이라고 명령을 내리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동방 박사를 헤롯에게 보내시고, 헤롯에게 아이를 죽이려는 마음을 불어넣으셨다.
그 여파로 예수님의 가족은 애굽으로 피신해야한 했다.
이 일로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라는 예언(호 11:1)을 이루셨다.
피신한 예수님의 가족은 헤롯의 아들 아켈라오를 두려워하여 다른 지방으로 가지 않고 나사렛으로 돌아왓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는 선지자의 예언을 이루시려고 아켈라오로 하여금 난폭한 정치를 하게 하시고, 요셉과 마리아가 그를 두려워하게 하셨다.
이 모든 일이 자기와 같은 시대에 태어난 자기보다 훨씬 보잘것 없어 보이는 한 사람을 위해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이라고 누군가 주장한다고 생각해보라.
동시대 사람들이 이것을 인정하기가 쉽갰는가?
더욱이 당시 사건은 주변 상황에 의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으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예언을 성취하신 것이라고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구약의 예언을 설명 듣고 깨달은 사람은 그 실체이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할 수 있었다.
신약 성경에는 우리에게 이룰 예언의 말씀이 남아있고, 예수님께서 보내주시기로 약속하신 한 목자가 소개되어 있다.
신약 예언을 깨닫는 사람은 그를 맞이할 것이나, 깨닫지 못하는 자는 초림 때 유대인들처럼 그를 핍박할 것이다.
혹여 내가 초림 때 살았더라면 유대인들처럼 예수님을 외면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확신하며 자만하는 사람이 있는가?
오늘날 우리는 먼저 자신을 돌아보고, 그 때 일을 거울과 경계로 삼고 신약이 이루어지는 때를 대비해야 한다(고전 10:11).
그리고 성경에 기록된 예언이 응할 때에는 그곳이 어디든, 예언의 실체가 누구이건 겸손히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