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식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마 9:14-17)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물었다.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마 9:14)
세례 요한이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잘 가르쳤다면, 그의 제자들이 이런 질문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세례 요한은 주의 집을 예비하러 온 사자이면서, 왜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께로 자기 제자들을 보내지 않고 바리새인들과 함께 예수님의 제자들을 비판했을까?
지각이 있는 사람은 분명 세례 요한의 사명에 문제가 있음을 눈치챘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대답하셨다.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뇨?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마 9:15)."
이스라엘의 결혼 문화를 살펴보면, 신랑과 신부의 친구들은 예식을 돕는 들러리 역할을 한다.
본문의 혼인집 손님들은 신랑의 들러리 친구들로서, 예수님의 제자들을 가리킨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신랑으로, 자신을 따라다니며 돕는 제자들을 혼인집 손님들로 표현하셨다.
세례 요한도 자기를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라고 하면서 신랑 되신 예수님을 돕는 들러리로 비유한 적이 있다(요 3:29).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금식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혹 금식 기간이 결혼 잔치에 참여하는 날과 겹친다면, 그때만큼은 금식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고 한다.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 기뻐하며 금식하지 않듯이, 신랑 되신 예수님과 함께 있는 사람들이 슬퍼하며 금식할 이유는 없다.
그것이 육의 금식이든, 영의 금식이든 말이다.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이것을 깨닫지 못하여 자신들처럼, 또 바리새인들처럼 금식하지 않는 예수님을 비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힐 때가 있음을 가리켜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를 것이라고 하셨다.
실제로, 그 일이 일어났을 때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이 슬퍼하였다.
세례 요한의 제자들뿐 아니라 그 시대 목자들은 육신의 금식과 같은 행위는 중요하게 여기면서, 정작 예수님의 말씀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예수님께서는 계속하여 말씀하셨다.
"생베 조각을 낡은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됨이요(마 9:16)."
생베는 물에 빨아 말리면 줄어드는 습성이 있다.
생베로 기운 낡은 옷을 세탁하면 생베가 오그라들어 옷감을 잡아당기어 헤어짐이 더욱 심해진다.
이와 같이 낡은 구습은 새 말씀을 감당하지 못한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들어 자신의 새 말씀을 낡은 유대교가 감당치 못할 것을 알리셨다.
진리는 없고 율법의 형식에만 젖은 유대교는 어디까지나 개혁해야 할 것에 지나지 않았다.
"새 포도주늘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마 9:17)."
이스라엘 사람들은 새 술을 빚으면 새 가죽 부대에 담아두었다.
신축성이 없는 낡은 가죽 부대에 새 술을 담아두면 새 술이 발효하면서 나오는 가스로 부피가 팽창하여 부대가 터져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새 술은 신축성이 좋은 새 가죽 부대에 담아야 술과 부대를 모두 보존할 수 있다.
새 시대가 되어 나오는 새 말씀은 새 마음의 부대에 담아야 한다.
이것은 낡은 구습을 버리지 못하여 예수님의 새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실족한 유대인들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특히, 서기관과 바리새인을 비롯한 종교 지도자들은,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변질된 전통을 고수하다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마다 시비를 걸고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막았다.
그러나 옛 것을 버리고 새 사람이 된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담는 새 부대가 되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전에 듣지 못한 새 말씀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진리이기에 과감히 옛 것을 버리고 예수님과 함께 새 시대를 창조하는 주역이 되었다.
이상과 같은 현상은 세상 끝에도 일어난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손에 일곱 인으로 봉해져 있던 책(계 5장)을 펼쳐서 한 목자에게 주어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가르치게 하신다(계 10장).
그 책에 기록된 말씀은 처음으로 세상에 공개되는 것이므로 새 노래로 비유되었다(계 14:3).
이 새 노래를 배우는 십사만 사천 명은 처음 익은 열매로 선별되어 하나님 나라 영적 새 이스라엘의 제사장이 된다(계 7장, 14:1-5, 5:10).
유대인들처럼 낡은 구습과 교리를 고집하며 지키려 하다가는,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때가 되어 공개되는 새 말씀을 부인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도 성경에 약속된 새 복음이 나올 때는 예수님 초림 때를 거울과 경계로 삼아 옛 것을 버리고 새 것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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